브리튼의 오페라 〈The Turn of the Screw〉, 대관령의 여름밤을 물들이다
2025 대관령음악제는 ‘Inter Harmony’라는 주제 아래, 서로 다른 요소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음악을 통해 탐색하고자 합니다. 하모니란 단지 조율된 소리의 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불협이, 때로는 침묵이 오히려 더 깊은 하모니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올해 음악제는 이러한 예술적 모순과 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소리와 감정의 경계에서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한가운데, 단출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지닌 한 무대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벤자민 브리튼의 심리 오페라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입니다.
이 작품은 오는 7월 30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무대 장치 없이 진행되는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시각적 요소 없이 오직 음악과 목소리만으로 펼쳐지는 이번 공연은, 관객 여러분께 소리로 구현된 심리극이라는 독특한 예술적 체험을 선사해 드릴 것입니다. 고요한 대관령의 자연과 울림 깊은 공간 속에서, 작품은 더욱 밀도 높게 다가올 것입니다.

2025 대관령음악제 Concert #13 브리튼의 걸작 “The Turn of the Screw” – 비밀과 유령 바로가기
나선처럼 조여오는 음악의 구조 – 《The Turn of the Screw》 작품 해설
헨리 제임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사의 회전》은 외딴 시골 저택에 도착한 젊은 가정교사와 두 아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입니다. 유령, 죽음, 침묵,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의 뒤엉킴이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정교하게 직조됩니다. 이 오페라는 총 16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면은 단 12음으로 이루어진 짧은 선율인 ‘나사 주제(Screw Theme)’를 변주하는 형식으로 시작됩니다. 브리튼은 이 단순한 선율을 리듬, 화성, 음색의 다양한 방식으로 뒤틀고 전개하며, 극의 흐름과 함께 점차 조여오는 듯한 심리적 압박을 음악 자체로 설계하였습니다. 또한, 《나사의 회전》은 단 13명의 연주자와 소수의 성악가로 구성된 소편성 오페라임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섬세하고 풍부한 사운드를 자아냅니다. 각 악기는 등장인물의 정서와 긴장을 대변하듯 쓰이며, 특히 클라리넷과 하프의 불안한 결합, 현악기의 글리산도, 그리고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의 침묵은 말보다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합니다.
브리튼은 인물의 억양과 문장 구조, 심지어 숨결까지 계산하여 음악을 구성했습니다. 그 결과, 대사는 단순한 노랫말을 넘어 음악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심리적 독백으로 변모합니다. 이 오페라는 단순한 유령 이야기를 넘어서, 불안과 의심, 보호와 파괴, 순수함과 타락의 경계에 선 인간 심리를 정밀하게 탐구하는 음악 심리극으로 거듭납니다.
해석은 열려 있고, 모든 가능성이 공존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정한 ‘Inter Harmony’란 조화만이 아닌 모순과 긴장의 공존임을 깨닫게 됩니다.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 음악으로 인간의 내면을 기록하다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 은 20세기 영국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오페라・실내악・합창곡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둠과 진실을 끊임없이 탐구한 예술가입니다. 그는 사회적 소외와 고독, 심리적 균열과 갈등에 천착하며, 그것을 탁월한 음악 언어로 형상화해냈습니다.《피터 그라임스(Peter Grimes)》, 《전쟁 레퀴엠(War Requiem)》, 그리고 《나사의 회전》은 모두 인간 존재의 본질과 심리적 복잡성을 다룬 대표작들입니다. 이들 작품에서 브리튼은 음악이 감정을 설명하는 수단을 넘어서, 감정 그 자체가 되는 순간을 창조해 냅니다.
그는 언어와 음악, 구조와 직관, 이성과 감정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끊임없이 탐색했으며,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2025 대관령음악제가 제시한 주제 ‘Inter Harmony’와 깊은 예술적 접점을 형성합니다. 침묵, 불협, 모호함을 담은 그의 음악은 오히려 더 깊은 정서적 진실을 전달하며, 듣는 이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내면의 소리
이번 《나사의 회전》 공연은 무대 장치 없이 음악과 노래만으로 진행되는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관객 여러분은 시각적 정보 없이 온전히 소리와 목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브리튼의 섬세한 음악은 이러한 형식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대관령의 청정한 자연과 알펜시아 콘서트홀의 울림 깊은 공간은, 이 불안하고도 섬세한 작품의 정서를 더욱 풍부하게 감싸줄 것입니다. 외딴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 그것을 둘러싼 인물들의 불확실한 감정들, 그 모든 것이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하나의 ‘들리는 심리극’으로 구현될 때, 여러분께서는 어느새 그 저택의 안으로 발을 들이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나사의 회전》은 단지 오페라 한 편이 아닙니다. 그것은 벤자민 브리튼이라는 작곡가가 인간의 불안과 의심, 침묵과 혼란이라는 감정의 지형을 얼마나 정밀하게 음악화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예술적 결정체입니다.
2025년 여름, 대관령에서 마주할 이 조용한 소리의 심리극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잔향처럼 머무는 울림이 될 것입니다.

Benjamin Britten 의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을 비롯한 주요 작품의 공식 악보와 라이선스는 Boosey & Hawkes 의 한국 공식 파트너 에디션코리아에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