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7월 1일은 전후 음악사를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가운데 한 명인 Hans Werner Henze(1926–2012)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그는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다채롭고 논쟁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현대성과 전통, 정치적 사유와 서정성을 동시에 아우른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인물입니다. Henze는 종종 ‘현대음악 작곡가’로 분류되지만, 그의 작품은 차갑거나 난해하기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서사를 깊이 품고 있다는 점에서 폭넓은 청중과 만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926년 Gütersloh에서 태어난 Henze는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독일 사회를 직접 경험하며 강한 정치적·사회적 문제의식을 지닌 예술가로 성장하였습니다. 그의 음악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절충주의’와 ‘정치적 참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음악계는 Karlheinz Stockhausen이나 Pierre Boulez 같은 작곡가들이 주도하는 엄격한 아방가르드와 Serialism(시리얼리즘)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Henze는 이러한 서독의 미학적 교조주의와 정치적 분위기에 거리를 두고자 1953년 Italy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 Twelve-tone technique(12음 기법)과 같은 현대적 기법 위에 선율, 색채, 극적 감각을 결합한 자신만의 서정적인 음악 언어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당대 전위적인 동료들로부터 “전통으로 회귀한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들은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사랑받는 현대 음악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열렬한 사회주의자로서 베트남 전쟁이나 계급 투쟁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담아내며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를 실천한 행동하는 지성이었습니다.
Henze의 음악은 문학, 영화, 연극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오페라와 무대 작품에서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동시에 그는 교향곡, 현악 작품, 실내악 등 순수 기악 장르에서도 풍부한 레퍼토리를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아직 Henze의 음악이 자주 연주되지 않고 있어, 그의 작품 세계를 처음 접하는 청중을 위한 안내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너무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Henze라는 작곡가의 인장(Signature)이 확실히 찍힌” 곡을 소개합니다.

- Fantasia für Streicher (1966)
[추천 이유: 영화적인 몰입감과 친숙함] Henze 입문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관문이 되는 작품입니다. 영화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어 현대 음악 특유의 긴장감이 영화적 서사로 치환되어 들립니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Adagio의 우울함부터 격정적인 Allegro까지 맛볼 수 있어, Henze의 현악 다루는 솜씨를 가장 쉽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 Undine (1958)
[추천 이유: 환상적인 색채미와 서정성의 정점] Henze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고 탐미적인 곡을 꼽으라면 단연 이 곡입니다. 발레 음악 특유의 이야기 구조 덕분에 현대적인 불협화음조차 ‘신비로운 물속의 소리’처럼 들리는 마법을 부립니다. 아방가르드한 기법과 이탈리아식 서정주의가 얼마나 완벽하게 결합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 Cinque canzoni napoletane (1956)
[추천 이유: 명료한 선율과 인간적인 따스함] 가장 대중 친화적인 Henze를 만날 수 있는 곡입니다. 이탈리아 민요의 숨결이 느껴지는 선율 덕분에 현대 음악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성악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면서도 세련된 현대적 편곡이 돋보여, ‘노래하는 Henze’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습니다. - Der junge Lord (1964)
[추천 이유: 연극적 재미와 사회 비판의 조화] Henze의 오페라 중 가장 접근하기 쉽고 재미있습니다. 블랙 코미디 형식을 빌려 속물적인 사회를 비판하는데, 음악이 마치 Mozart나 Rossini의 오페라처럼 명쾌하고 재치 있게 흐릅니다. 현대 오페라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줄 수 있는 최고의 입문작입니다. - El Cimarrón (1969-70)
[추천 이유: Henze의 정치적 신념과 혁신성 체험] 앞선 곡들이 조금 부드러웠다면, 이 곡은 Henze의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면모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단 4명의 연주자가 만드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연극적인 구성은 현대 음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전율을 선사합니다. 조금은 ‘매운맛’이지만, Henze의 진정한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입니다. - Symphony No. 3 (1949)
[추천 이유: 전통 교향곡의 무게감과 표현주의의 긴장감] Gustav Mahler 이후 독일 교향곡의 전통을 잇는 초기 대표작입니다. 신고전주의적인 질서와 표현주의적인 분출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기존의 클래식 교향곡에 익숙한 감상자라면 큰 거부감 없이 20세기 교향곡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입문용 교향곡입니다.

Hans Werner Henze의 음악은 차가운 이론의 나열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시대를 고민하는 지성이자 선율의 힘을 믿었던 예술가였습니다. 당대의 주류였던 전위 음악의 흐름 속에서도 독자적인 길을 걸었던 그의 음악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남긴 풍부한 음의 세계를 탐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때로는 날카로운 긴장감으로, 때로는 지중해의 따뜻한 서정성으로 다가오는 그의 음악은 현대 음악이 우리 삶에 얼마나 가깝고 뜨거운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Hans Werner Henze 의 주요 작품의 공식 악보와 라이선스는 Schott Music 의 한국 공식 파트너 에디션코리아에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